아침 눈을 뜨고 밥상을 차리 듯, 나를 꾸미고서 외출하였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우리에서 나온 포유류의 기분은 맑았다. 코트도 입지 않고서 차에 앉았지만 히터를 털지 않아도 되는 기온이었다. 강남 제비가 날아 올까 걱정도 되는 그런 날. 서서히 차를 출발시켜 연수원으로 향했다. 1정 연수 중의 연수생들이 아기 같이 보임은 내가 늙었음을 알리는 징후이리라. 그래. 요즘은 부쩍 나이 들었음을 의식하게 된다.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 중이다.
어찌하던 준비한 찰떡과 음료수를 건네고 45도 경사길을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폰에 진동이 왔다. 동행했던 이로부터 무조건 그
자리에 서 있어라는 명령이 전달되어 왔다. 순간에 비탈길 옆에 불안한 멈춤으로 예측되지 않는 이유들을 억지로 머리 속에서 뒤지고 있을 즈음
백밀러에 차가 들어와 옆에 섰다. 그리고 차창 넘어 손 내밀어 건네 주는 CD 한 장! 표면에는 "장사익"이 적혀 있다. 손 흔들며 인사를
전하고 CD롬에 밀어 넣었다.
어쩜 그토록 애잔할 수 있는지. 그 음절들을 가슴으로 들으며 눈에서는 물줄기를 내비치며, 입가에는 더불어
사는 이들을 향한 그리운 미소를 머금고, 그렇게 차를 몰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봄볕 닮은 겨울 햇빛을 받고 섰다가 마음을 주고 받는 이를 만나
함께 영안실로 들어섰다. 망자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상주는 정년 퇴임 4년차 되시는 분이다. 언제 종교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편안한 분위기에 망자의 복된 마무리를 시사하고 있었다. 간단한 예를 표하고 그 간의 격조 했음에 송구함을 전하고 그렇게 예를 마치고 난
다음 친지와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복잡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봄볕 같은 햇살 속을 걸었다. 10여분 걷다가 중국집을 찾아 들었다. 아파트 상가 내 2층에 위치한 집이었다. 소박한 2층 다락방 분위기의 집이었다. 아르바이트생 같은 점원이 주문을 받았다.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카페에 있는 듯도 했다. 만나 얘기를 나누노라면 서로의 진실들이 서로 오고가며 우리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그런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과만 살 수 없는 것이 삶이리라. 오랜만에 그것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 일은 신기함도 주었다. 자장면과 더불어 삭삭한 점원이 그 집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어느 시골 간이역 음식점에 있는 착각이 일기도 했다. 아주 평이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한 순간이었다. 자장면에 커피까지 그 집에서 먹고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듯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서운해서 좀 더 멀리 있는 친지의 차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좀 더 깊은 속내를 얘기하고 서로 소통함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러한 삶의 가장 간단한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부류의 사람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가지자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1년뒤 명퇴하겠다는 것과 승진에 욕심 없다는 마음들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이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네들 기준으로 막무가내의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야한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고 헤어졌다.
주차장에서 빠져 나와 좌회전을 하기 위해 섰지만 직진하고 싶어 하는 차가 뒤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를 못 참고 차를 출발시켜 직진을 했다.
죄회전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참지 못하는 그 운전자도 이해해야지 하면서 차를 몰았지만 유턴의 신호는 너머 멀리 있었다. 그래도 숨 한 번 크게
쉬고 차를 달래었다. 점심시간이 너머서자 기온은 더욱 따뜻해져서 졸음까지 오게 했다. 집에 바로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집 앞 신호등을
지나서 차를 몰아 한적한 사찰의 순환도로길에 들어섰다. 늘 마음을 달래느라 찾는 곳이다. 20킬로의 속도로 차창을 다 내리고 걷듯이 서서히
숲속으로 들어섰다. 기분의 맑아짐. 겨울 속 깊이에서 움터오는 새싹의 기분이었다. 산다는 것, 실존하는 존재자. 다 무슨 의미인지. 그저 사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맑음을 뚫고 용솟음치는 그리움! 세계 속으로 돌아오며 그 그리움을 즐기는 정신분열증. 이것이 세상을 사는
현명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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