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영화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 미리 보는 서울독립영화제 2008
'서울독립영화제 2008'은 풍성한 수확으로 들떠 있다. 경쟁 부문의 경우 역대 최대 규모의 참여로 양과 질이 모두 높아졌다. 지난해와 달리, 단편보다는 장편이,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가 많이 늘었다. 주류 영화계가 투자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저예산에 익숙한 독립영화의 체력이 불황기에 더욱 빛나는 것일까? 영화제 사무국의 추천을 받아, 볼만한 장편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영화제는 11~19일 서울 저동 중앙시네마(인디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에서 열린다. www.siff.or.kr, (02)362-9513.
해체되는 조선족 사회의 보고서
개막작 < 푸른 강은 흘러라 > (감독 강미자) ①
개막작으로 선정된 < 푸른 강은 흘러라 > 는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가족들로 인해 상처와 상실감에 시달리는 중국 연변 조선족 청소년들의 삶을 담았다. 조선족자치주의 고등학생 철이의 가족은 흩어져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들도 붕괴 상태다. 어른들은 돈 벌러 서울로 떠났고, 아이들은 그들이 벌어온 돈으로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를 사고, 노래방에서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마지막 남은 삶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철이의 단짝 숙이는 철이의 일탈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넌 얼마나 소박하고, 열정적이고, 뜨거웠니." 숙이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철이를 부른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푸른 두만강, 혼탁하지 말고 영원히 푸르게 흘러라"는 소박한 바람을 전한다. 하지만, 어떤 강도 영원히 푸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견디기 힘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마흔살짜리 소와 여든살 농사꾼
장편 경쟁 4문 < 워낭소리 > (감독 이충렬) ②
경북 봉화 하눌마을의 늙은 농군 최원균(80)씨는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한 40살짜리 소와 함께 산다. 늙어 기진한 소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달구지를 끌고, 어릴 때 앓던 병으로 왼다리를 쓰지 못하는 농부는 두통을 견디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며 소를 재촉한다.
소와 노인이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 워낭소리 > 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다. 노인은 소에게 먹일 꼴을 베느라 밭에 농약을 치지 못하고, 손쉽게 사료를 먹일 생각도 하지 못한다. 늙은 소와 농군이 만들어 내는 절박한 노동의 풍경 너머로, 이앙기와 트랙터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기계식 영농과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집회 풍경이 언뜻 겹쳤다 사라진다. 노인 부부가 한겨울을 날 수 있는 장작을 모두 지어 나른 소는 결국 일어서지 못한다. "에이씨, 좋은 데 가거라." 노인은 평생 소를 얽매 왔던 코뚜레 줄을 끊는다. 같이 늙어 간다는 것은 때로 견딜 수 없이 서글픈 일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건 함께했던 삶의 두께만큼이나 힘겨운 일이다.
거친 리얼리티에 담긴 삶의 진정성
장편 경쟁 부문 < 낙타는 말했다 > (감독 조규장) ③
< 낙타는 말했다 > 는 출구가 막혀버린 막장 인생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영화는 처음부터 배꼽을 잡게 만든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영광(김낙형)이 두부를 사먹으러 들어간 구멍가게에서 주인과 육두문자를 주고받는 장면. 영광은 이렇게 수틀리면 아무한테나 쌍욕을 해대는 인간이다. 새장가를 들어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의처증과 가정폭력으로 그것마저 어렵게 되고, 운명은 끝내 그의 행복을 거부한다. 감독은 그의 불행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어한다. 재개발 반대자들의 회의장에 들어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켜려고 하는데 잘 켜지지 않는다거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아내가 던진 밥그릇에 눈을 얻어맞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은 유머를 뽑아낼 줄 아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준다. 대학로의 실력파 연출가 김낙형이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가정폭력은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국내 초청 부문 < 똥파리 > (감독 양익준) ④
영화가 열리자마자 길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패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외국인은 이런 영화를 보고 "한국에서는 이렇게 여자를 때리나요?"라고 물었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끔씩 목격하는 살풍경이다. 포장지로 싸지 않은 날것의 미학을 보여주는 < 똥파리 > 는 가정폭력이 어떻게 대물림 되는가에 대한 모색이다.
상훈(양익준)은 조폭이라기보다는 동네 양아치에 가까운 건달이다. 대학생 농성을 진압하거나, 포장마차 철거 등 사회적 약자를 갈취하는 일에 곧잘 동원된다. 본업은 폭력을 동반한 사채 회수다. 기이한 운명으로 엮인 상훈과 연희(김꽃비)는 저마다 가정폭력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가슴 아픈 건 이렇게 살아가는 청춘들이 지금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주연과 각본, 연출까지 도맡은 양익준이라는 '물건'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는 값지다.
이재성 길윤형 기자 san@hani.co.kr ,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해외 초청 부문은
'숏버스' 등 살색 야한영화 10편 선봬
여전히 '외설'은 표현의 자유 논란에서 가장 뾰족한 꼭짓점이다. '서울독립영화제 2008'은 "정상적으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골라 상영하는 해외 초청 부문 '감각의 독립, 섹스-표현의 자유를 누려라'를 마련했다. 국내에 수입됐으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던 < 숏버스 > (사진) <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 2 > 와 필리핀 독립영화의 '떠오르는 별' 브리얀테 멘도사의 칸 영화제 진출작 < 서비스 > 등 10편을 상영한다. < 헤드윅 > 을 연출했던 존 캐머런 미첼의 두 번째 작품 < 숏버스 > 는 섹스가 소통의 매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며, < 남자들이… > 는 영화감독 프랑수아가 섹스에 관한 영화를 찍으면서 얻게 된 섹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다루는 메타 영화다. 록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 뜨거운 밤을 보낸 남녀가 아홉 곡의 라이브 음악을 배경으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 나인 송즈 > 도 볼만한 영화로 꼽힌다.
해체되는 조선족 사회의 보고서
개막작 < 푸른 강은 흘러라 > (감독 강미자) ①
개막작으로 선정된 < 푸른 강은 흘러라 > 는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가족들로 인해 상처와 상실감에 시달리는 중국 연변 조선족 청소년들의 삶을 담았다. 조선족자치주의 고등학생 철이의 가족은 흩어져 있다.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들도 붕괴 상태다. 어른들은 돈 벌러 서울로 떠났고, 아이들은 그들이 벌어온 돈으로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를 사고, 노래방에서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마지막 남은 삶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철이의 단짝 숙이는 철이의 일탈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넌 얼마나 소박하고, 열정적이고, 뜨거웠니." 숙이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철이를 부른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푸른 두만강, 혼탁하지 말고 영원히 푸르게 흘러라"는 소박한 바람을 전한다. 하지만, 어떤 강도 영원히 푸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견디기 힘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마흔살짜리 소와 여든살 농사꾼
장편 경쟁 4문 < 워낭소리 > (감독 이충렬) ②
경북 봉화 하눌마을의 늙은 농군 최원균(80)씨는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한 40살짜리 소와 함께 산다. 늙어 기진한 소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달구지를 끌고, 어릴 때 앓던 병으로 왼다리를 쓰지 못하는 농부는 두통을 견디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며 소를 재촉한다.
소와 노인이 함께했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 워낭소리 > 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다. 노인은 소에게 먹일 꼴을 베느라 밭에 농약을 치지 못하고, 손쉽게 사료를 먹일 생각도 하지 못한다. 늙은 소와 농군이 만들어 내는 절박한 노동의 풍경 너머로, 이앙기와 트랙터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기계식 영농과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집회 풍경이 언뜻 겹쳤다 사라진다. 노인 부부가 한겨울을 날 수 있는 장작을 모두 지어 나른 소는 결국 일어서지 못한다. "에이씨, 좋은 데 가거라." 노인은 평생 소를 얽매 왔던 코뚜레 줄을 끊는다. 같이 늙어 간다는 것은 때로 견딜 수 없이 서글픈 일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건 함께했던 삶의 두께만큼이나 힘겨운 일이다.
거친 리얼리티에 담긴 삶의 진정성
장편 경쟁 부문 < 낙타는 말했다 > (감독 조규장) ③
< 낙타는 말했다 > 는 출구가 막혀버린 막장 인생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영화는 처음부터 배꼽을 잡게 만든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영광(김낙형)이 두부를 사먹으러 들어간 구멍가게에서 주인과 육두문자를 주고받는 장면. 영광은 이렇게 수틀리면 아무한테나 쌍욕을 해대는 인간이다. 새장가를 들어 열심히 살아보려 하지만 의처증과 가정폭력으로 그것마저 어렵게 되고, 운명은 끝내 그의 행복을 거부한다. 감독은 그의 불행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고 싶어한다. 재개발 반대자들의 회의장에 들어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켜려고 하는데 잘 켜지지 않는다거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아내가 던진 밥그릇에 눈을 얻어맞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은 유머를 뽑아낼 줄 아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준다. 대학로의 실력파 연출가 김낙형이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가정폭력은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국내 초청 부문 < 똥파리 > (감독 양익준) ④
영화가 열리자마자 길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패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외국인은 이런 영화를 보고 "한국에서는 이렇게 여자를 때리나요?"라고 물었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끔씩 목격하는 살풍경이다. 포장지로 싸지 않은 날것의 미학을 보여주는 < 똥파리 > 는 가정폭력이 어떻게 대물림 되는가에 대한 모색이다.
상훈(양익준)은 조폭이라기보다는 동네 양아치에 가까운 건달이다. 대학생 농성을 진압하거나, 포장마차 철거 등 사회적 약자를 갈취하는 일에 곧잘 동원된다. 본업은 폭력을 동반한 사채 회수다. 기이한 운명으로 엮인 상훈과 연희(김꽃비)는 저마다 가정폭력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가슴 아픈 건 이렇게 살아가는 청춘들이 지금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주연과 각본, 연출까지 도맡은 양익준이라는 '물건'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는 값지다.
이재성 길윤형 기자 san@hani.co.kr ,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해외 초청 부문은
'숏버스' 등 살색 야한영화 10편 선봬
여전히 '외설'은 표현의 자유 논란에서 가장 뾰족한 꼭짓점이다. '서울독립영화제 2008'은 "정상적으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골라 상영하는 해외 초청 부문 '감각의 독립, 섹스-표현의 자유를 누려라'를 마련했다. 국내에 수입됐으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던 < 숏버스 > (사진) <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 2 > 와 필리핀 독립영화의 '떠오르는 별' 브리얀테 멘도사의 칸 영화제 진출작 < 서비스 > 등 10편을 상영한다. < 헤드윅 > 을 연출했던 존 캐머런 미첼의 두 번째 작품 < 숏버스 > 는 섹스가 소통의 매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며, < 남자들이… > 는 영화감독 프랑수아가 섹스에 관한 영화를 찍으면서 얻게 된 섹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다루는 메타 영화다. 록 콘서트에서 처음 만나 뜨거운 밤을 보낸 남녀가 아홉 곡의 라이브 음악을 배경으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 나인 송즈 > 도 볼만한 영화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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