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세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단상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평가가 있다. 클래식이라는 소재에 주목해 전문직 드라마에 비중을 두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통 사람들의 꿈과 희망에 방점을 찍은 사람도 있다. 어느 쪽에 비중과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도 나뉜다.
최근 발행된 <한겨레21>(735호)의 홍진아·홍자람 작가 인터뷰는 그런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두 작가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다”면서 “이 드라마를 하는 이유는 ‘클래식’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작가가 어떤 점을 지향하고자 했는지는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강마에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연고주의
많은 언론이 ‘강마에 신드롬’을 주목하면서 주로 독설과 그의 독특한 리더십에 초점을 맞췄지만 개인적으로는 강마에의 ‘개인주의’와 한국의 연고주의에 더 관심이 갔다.
사실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개인주의’로 함축시키는 데 따른 위험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강마에의 클래식 연주와 오케스트라 선발이 철저히 실력을 위주로 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한국의 연고주의 문화와 극명히 대비된다.
연고주의 -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실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단순히(!) 실력과 재능 하나만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혈연은 기본이고 지연과 학연 등을 동반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실력과 재능이 뛰어난 지휘자라 해도 성공하기 힘든 곳 - 그곳이 바로 한국이다.
강마에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서 있는 위치는 그래서 흥미롭다. 그는 클래식이라는 ‘비대중적인’ 분야에서 학연과 지연·혈연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오직 실력 하나로만 승부한다. 온갖 관계망 속에 얽힌 엘리트 세계에서 이런 ‘실력주의’가 통할 수 있을까. 실력은 인정받으면서도 영원한 에이 마이너일 수밖에 없는 강마에를 끝까지 주목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들 아는 것처럼 강마에는 독특하다. 매우 독특하다.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요즘으로 따지면 ‘상위 계층’에 속하는 신분을 가지고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다. ‘그 정도 급’에서는 통상 연고와 조직을 바탕으로 ‘유유상종’ 문화에 적응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무엇보다 실력을 우선함으로써 고립을 자초했다.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학벌’보다 진짜 실력이 있는 지를 기준으로 삼는, 현실 세계에서는 참 발견하기 어려운 ‘엘리트’ 유형이다. 그러니 고졸 학력의 강건우를 제자로 삼았겠지만.
강마에 독설’에 대한 대중의 열광과 집단주의
많은 사람들이 강마에의 독설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이 가능했던 건 현실은 정반대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강마에가 자신의 제자인 강건우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 정명환에게 보내면서 한 얘기는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인 세계가 어떤 지를 잘 보여준다. ‘제 아무리 뛰어난 강마에지만’ 제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고를 바탕으로 한 문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정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마치 영원한 에이 마이너스인 자신의 운명을 제자에게 물려주기 싫은 것처럼.
각종 네트워크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현실 자체가 사실 버겁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현실적인 대중을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시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희망을 가질 수 없고 꿈조차도 꾸기 어려운 현실에서 강마에라는 캐릭터 자체가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말이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단원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말이다.
강마에의 독설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꼈던 건 그것이 독설이라서가 아니라 정확히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지연과 혈연․학연 등 집단적 연고문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강마에처럼 실력과 재능을 우선하는 그런 문화와 풍토를 가졌다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탄생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종영과 함께 강마에를 ‘그리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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