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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에 관한 다음 두 가지 오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아직도 체벌이 관습법적으로는 물론 실정법적으로도 허용된다는 인식이 그 하나이다.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체벌은 당연하다고 한다.이 입장은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내세우는 체벌허용론의 옹호를 받는 반면,체벌반대론으로부터는 호된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논의는 현행 법제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그리고 이에 기초한 일선 학교의 체벌관련규정을 살펴보면 체벌은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법해석에 관한 한 체벌찬반 논란은 무의미하다.판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관하여 체벌금지 원칙을 유지하였으며,이 원칙 준수에 더욱 엄격한 해석으로 나아가는 추세이다.
다만 시행령에는 교육적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체벌할 수 없다는 규정(제31조 7항)이 있다.바로 이로부터 체벌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오해가 기인하기도 한다.그러나 이 규정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전제로 일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행사된 체벌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체벌관련규정은 이때 학생이 체벌에 응하지 않고 대체벌을 요구할 수도 있게 함으로써 체벌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였다.그러므로 이 규정은 단지 체벌의 ‘예외적’ 허용을 의미할 뿐이다.정당방위에 의한 상해가 정당화된다고 하여,상해행위가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하나의 오해는 체벌금지에 대한 접근방법과 관련된다.위 시행령의 체벌 허용이 아무리 예외적일지라도 체벌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시 하는 견해가 그것이다.이 입장은 결국 체벌금지의 확실한 보장을 위해서는 이마저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체벌 문제는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과 같은 형법의 일반적 정당화사유로 해결하면 족하다는 것이다.바로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체벌허용사유의 폐지를 권고하였고,국가인권위원회도 교육부에 같은 권고를 한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입장을 체벌에 대한 오해라고 하기는 어렵다.궁극에 가서는 이러한 주장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는 지금 우리의 체벌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이미 존재하는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그 규정의 폐지를 논하는 것은 성급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사회 문제가 된 체벌은 현행 허용사유가 요구하는 기준에는 아예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따라서 그럴듯한 법개정 논의에 오히려 현행법이라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 주장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이 한에서 이러한 시도는 솔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허하게 보인다.반면 우리의 체벌 현실은 그 발생가능성과 그로 인한 피해의 확장을 생각하면 긴급하다.이상적이긴 하나 한가한 체벌담론보다 현행법 준수가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첫째,이른바 ‘징계행정’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교사가 체벌을 하지 않고도 적절한 학생지도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둘째,체벌금지와 징계행정에 대한 교육이 사범대와 교육대의 교과과정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셋째,체벌 논란에서 교사와 학생의 입장을 공정하게 보호해 줄 기구 설치를 검토하는 것 등이다.
윤용규 강원대 법대 형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