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사회
글쓴이 : 조선일보 원글보기
메모 :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선배들에 음식·술·기생 접대 잔치비용 때문에 파산하거나 신고식 때 뭇매 맞아 죽기도
그을음으로 시커먼 부엌 벽에 거미처럼 달라붙어 양손과 온몸을 숯검댕으로 만드는 '거미잡이'를 한 뒤 재 씻은 물 다 마시기, 사모관대를 한 채로 연못에 뛰어들어 고기잡기, 얼굴에 오물을 바른 채 광대놀이 하기, 한겨울에 물에 집어넣고 한여름에 뙤약볕에 세워놓기….
'흥부가'에 등장하는 놀부가 동네 사람 골탕먹이는 기술이 아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들이 관직에 나아가기에 앞서 통과해야 했던 신고식의 벌칙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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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망하게 만든 망조(亡兆) 중 하나가 분경(奔競)과 철행(綴行)이다. 분경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줄임말로 관리들이 인사를 관장하는 고위관리나 정권 실세들을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벼슬을 따내려 했던 일종의 엽관(獵官)운동이다. 철행은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하인들을 이끌고서 공공연하게 고위관리나 정권 실세들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던 행차다. 그 말뜻에서 보듯 인맥을 꿰러 다닌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가 안 망했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그러다 보니 새나라 조선에서는 분경이 금지됐고 철행도 '유가(遊街)'로 바뀌었다. 흔히 TV사극에 등장하는 어사화 머리에 꽂고 자기 동네에서 '마(馬)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이 바로 유가다. 철행이 위세를 부리는 것이었다면 유가는 자축하는 정도였다.
분경금지와 함께 철행도 유가로 약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유가도 문과에 급제했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허참례(許參禮), 중일연(中日宴), 면신례(免新禮)로 이어지는 공포의 3중 신고식을 통과한 자만이 머리에 어사화 꽂고 '금의환향(錦衣還鄕)'해 '마퍼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과거에 급제한 자는 신래(新來)라고 불렸다. 이들은 일단 예문관 성균관 교서관 승문원 등에 배치돼 오늘날의 인턴 과정을 밟도록 돼 있었다. 이들 4곳 모두 문신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배치가 되었다고 해서 자리를 배정받아 일을 할 수 없었다. 허참례(許參禮), 즉 참여를 허락하는 절차를 아직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지(權知)로 불리던 인턴들은 배속된 부서의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돈을 마련해 선배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어야 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따르면 원래 허참례는 신래들의 기강을 확립하려는 좋은 뜻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변질됐다고 한다. 그에 따라 명칭도 신래침학(新來侵虐)으로 바뀌어 불릴 정도였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는 기본이고 온갖 음식과 술에 기생까지 불러야 하는 연회의 모든 비용도 권지들이 지불해야 했다. "새로 배속된 사람을 괴롭혀서 여러 가지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졸라서 바치게 하는데 한이 없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달이 지나도 동좌(同坐·권지에게 옆자리에 앉아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를 불허하고 사람마다 연회를 베풀게 하되 만약 기생과 음악이 없으면 신래와 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사람에게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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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자리에서 신래침학은 절정에 이른다. 각종 내기가 진행되는데 고참은 져도 벌주가 없고 신래가 지면 벌주에다가 각종 침학(侵虐)이 이어졌다. 즉석에서 별명을 붙여주면 그에 어울리는 흉내를 내야 했고 고분고분하지 않다가는 뭇매도 다반사였다. 단종 때는 허참례를 치르던 신래가 죽는 사건까지 생겼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면신례(免新禮)를 치른다. 동좌를 허락하는 연회다. 초창기에는 허참례에서 면신례까지 열흘 정도였지만 점점 심해져서 한 달이 지나도 면신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도 문제였지만 대갓집 자제가 아니고서는 잔치 비용을 대다가 파산에 이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부유한 장사치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신래들도 있었다.
이런 악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인물 중 하나가 율곡 이이다. 명종 19년(1564년) 문과에 급제한 이이는 승문원에 발령을 받아 신래로서 허참례를 거부했다. 그 바람에 이이는 한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관직에 있던 퇴계 이황이 그 소식을 듣고 한마디 했다. "신래침학이 무리한 시속(時俗)이긴 하지만 그것을 이미 알고서 과거를 보지 않았는가?" 여기에도 율곡과 퇴계의 생각 차이가 있다.
그을음으로 시커먼 부엌 벽에 거미처럼 달라붙어 양손과 온몸을 숯검댕으로 만드는 '거미잡이'를 한 뒤 재 씻은 물 다 마시기, 사모관대를 한 채로 연못에 뛰어들어 고기잡기, 얼굴에 오물을 바른 채 광대놀이 하기, 한겨울에 물에 집어넣고 한여름에 뙤약볕에 세워놓기….
'흥부가'에 등장하는 놀부가 동네 사람 골탕먹이는 기술이 아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들이 관직에 나아가기에 앞서 통과해야 했던 신고식의 벌칙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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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가 안 망했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그러다 보니 새나라 조선에서는 분경이 금지됐고 철행도 '유가(遊街)'로 바뀌었다. 흔히 TV사극에 등장하는 어사화 머리에 꽂고 자기 동네에서 '마(馬)퍼레이드'를 벌이는 장면이 바로 유가다. 철행이 위세를 부리는 것이었다면 유가는 자축하는 정도였다.
분경금지와 함께 철행도 유가로 약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유가도 문과에 급제했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허참례(許參禮), 중일연(中日宴), 면신례(免新禮)로 이어지는 공포의 3중 신고식을 통과한 자만이 머리에 어사화 꽂고 '금의환향(錦衣還鄕)'해 '마퍼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과거에 급제한 자는 신래(新來)라고 불렸다. 이들은 일단 예문관 성균관 교서관 승문원 등에 배치돼 오늘날의 인턴 과정을 밟도록 돼 있었다. 이들 4곳 모두 문신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배치가 되었다고 해서 자리를 배정받아 일을 할 수 없었다. 허참례(許參禮), 즉 참여를 허락하는 절차를 아직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지(權知)로 불리던 인턴들은 배속된 부서의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돈을 마련해 선배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어야 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 따르면 원래 허참례는 신래들의 기강을 확립하려는 좋은 뜻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변질됐다고 한다. 그에 따라 명칭도 신래침학(新來侵虐)으로 바뀌어 불릴 정도였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는 기본이고 온갖 음식과 술에 기생까지 불러야 하는 연회의 모든 비용도 권지들이 지불해야 했다. "새로 배속된 사람을 괴롭혀서 여러 가지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졸라서 바치게 하는데 한이 없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달이 지나도 동좌(同坐·권지에게 옆자리에 앉아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를 불허하고 사람마다 연회를 베풀게 하되 만약 기생과 음악이 없으면 신래와 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사람에게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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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자리에서 신래침학은 절정에 이른다. 각종 내기가 진행되는데 고참은 져도 벌주가 없고 신래가 지면 벌주에다가 각종 침학(侵虐)이 이어졌다. 즉석에서 별명을 붙여주면 그에 어울리는 흉내를 내야 했고 고분고분하지 않다가는 뭇매도 다반사였다. 단종 때는 허참례를 치르던 신래가 죽는 사건까지 생겼다.
이런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면신례(免新禮)를 치른다. 동좌를 허락하는 연회다. 초창기에는 허참례에서 면신례까지 열흘 정도였지만 점점 심해져서 한 달이 지나도 면신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도 문제였지만 대갓집 자제가 아니고서는 잔치 비용을 대다가 파산에 이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부유한 장사치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신래들도 있었다.
이런 악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인물 중 하나가 율곡 이이다. 명종 19년(1564년) 문과에 급제한 이이는 승문원에 발령을 받아 신래로서 허참례를 거부했다. 그 바람에 이이는 한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 관직에 있던 퇴계 이황이 그 소식을 듣고 한마디 했다. "신래침학이 무리한 시속(時俗)이긴 하지만 그것을 이미 알고서 과거를 보지 않았는가?" 여기에도 율곡과 퇴계의 생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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