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와 인문의 느낌/철학 그 이론들

[스크랩] <푸른광장>위험한 여자

daseut 2007. 1. 22. 15:04
<푸른광장>
위험한 여자
조지 기싱의 자전적 수상록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고백’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 식탁에 놓인 대중 잡지에서 한 여성 필자가 쓴 한 편의 기사가 기싱의 관심을 끌었다. ‘사자 사냥’이라는 논픽션 기사였다. “내가 남편을 깨웠을 때, 약 40야드 밖에 있던 사자가 우리를 공격해왔다. 나는 구경 0.303인치 소총으로 사자의 가슴을 정통으로 쏘았는데, 나중에 보니 총알이 사자의 성대를 산산조각 낸 후 등뼈까지 망가뜨려놓았다. 사자는 두 번째 공격을 해왔고 다음 총알은 사자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서 심장을 너덜너덜하게 찢어놓았다.”

이 기사를 다 읽은 기싱은 이 여성 필자에 대한 감탄과 찬사를 길게 늘어놓는다. 요지는 총을 쏠 줄 알고 글을 쓸 줄 아는 이 여인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우아하고 품위 있고 교양미 넘치는 아름다운 여성상의 한 전형이라는 것이다. 여기다가 기싱은 상상력을 동원해 이 여인의 외모와 자태를 요모조모 그려놓는다. 총을 쏠 줄 알 뿐 아니라 글까지 쓸 줄 아는 이 비상한 재능의 여인, 젊고 아름다울 이 여성을 만나 한번만이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으리라는 어투로 글을 맺고 있다.

헤밍웨이의 멋진 소설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가 생각난다. 거기서 사자 사냥을 나선 주인공인 엽사 프랜시스 매코머는 저 로마의 전통 속에 있는 영국 여인과는 달리 성능 좋은 크레인 장총을 갖고도 사자 사냥에 실패한다. 100야드 바깥에 있는 사자를 보고서 공포에 질려 잠금장치를 풀지 못한 채 방아쇠를 당기기도 하고 발사된 총탄은 대체로 빗나가고 어쩌다 명중한 총탄은 사자를 쓰러트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용감한 사나이도 사자에게 세 번 놀란다. 사자의 발자국을 처음 보았을 때, 처음 포효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처음 사자와 마주쳤을 때다.’ 소설 속에서 헤밍웨이가 인용하는 소말리아의 속담이다.

그러나 기싱의 여주인공은 불과 40야드의 근접한 거리에서 침착하게 엽총도 아닌 권총으로 단 두방에 사자를 작살낸다. 기싱이 이 글을 썼던 연대가 지금부터 100여년 전의 영국임을 생각한다면 여염집 여자가 그런 담력과 엽사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비범한 일이다. 더구나 명중한 탄환이 헤집어놓은 사자의 사체를 냉철하게 관찰하고 유려한 글쓰기로 옮겨놓기까지 했으니. 의당 기싱의 찬사를 한몸에 받을 만하다.

하지만 기싱류의 로맨티시즘에서 빠져나오면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위험물로 세가지를 들었다. 무기, 언어, 여자다. 페미니스트들은 분노하겠지만 특히 여자에 대해서는 ‘위험물 중의 위험물’이라는 특별한 경고표지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려준다. 기싱에게는 로마의 전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교양의 전형적 모델, 즉 총 쏠 줄 알고, 글 쓸 줄 아는 여인이, 쇼펜하우어가 졸지에 세 위험물을 하나에 집약시킨 최상의 위험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순진했다. 더 위험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 언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까. ‘사자 사냥’은 어쩌면 상상력과 언어만으로 꾸며낸 순전한 하나의 서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심지어 여성 필자라는 것까지 누군가의 언어가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 필자 혹은 저자는 특정한 기표로 원고 첫머리나 책표지에 적힌다. 그러나 필자, 저자가 진짜 텅빈 기표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혹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주장처럼 ‘기의(진짜 필자)는 끝없이 기표(표시된 필자)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다.’

요즈음 출판가에서 ‘이 책의 진짜 필자는 누구인가’가 출판의 윤리성을 점검하는 새삼스러운 물음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제된 필자들의 해명은 다시 그 의심스러운 언어로 엮어지고, 출판사의 변명은 또 그 언어의 언어로 짜여 있다. 책의 제작은 집필과 출판의 두 과정으로 이뤄지고 이 양자 사이에 틈이 있으니 여기에 기만이 깃들 수 있는 항존하는 가능성이 있다. 도대체 결국 누가 썼다는 말인가. 그렇다. 위기 언어의 정체는 언제나 언어 위기였다. 아아 언어, 이 위험한 물건이여.

[[이왕주 / 부산대 교수·철학]]




view_setting();
기사 게재 일자 2007/01/18
출처 : 삶, 무의 존재 존재의 무
글쓴이 : daseut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