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술의 발달
사실 정지된 사진에서 움직이는 영상(영화)으로의 이행은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였다. 인간의 타고난 시지각 능력이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영화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인간의 눈은 어떤 대상을 한동안 바라보고 나면 그 대상에 서 눈이 떠나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망막에 그 이미지를 보존한다. 예컨대 형광등이나 태양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각잔상효과라고 한다. 시각잔상효과 덕분에 인간은 정지된 사진에서 영화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현실의 동작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1초에 24장의 사진이 필요하다. 즉 초당 24개의 정사진이 영사기를 통해 빠르게 제시되면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아무리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진을 찍어 빠르게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정사진들의 모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사진과 정사진 사이의 간격(틈)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시각잔상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인간의 시지각적 능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가 1895년 파리 그랑 카페에서 개봉되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이 그것이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떠나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인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였다. 그러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적인 재미라기 보다는 육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움직임이 스크린을 통해 재현된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과 놀라움 때문이다. 이후 뤼미에르 형제는 <열차의 도착>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세계 각국으로 사람들을 보내 특이한 풍물들을 찍어오도록 시켰고 그것으로 영화는 성공적인 출발을 예고 받았다. 당시 뤼미에르가 만든 영화들은, 영역을 따지자면 다큐멘타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뤼미에르는 리얼리즘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뒤, 뤼미에르와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든 조르쥬 멜리에스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전직이 마술사였던 메리에슨는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마술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것은 우연한 발견으로 추진되었다. 어렵게 카메라를 구한 메릴에스가 어느 날 거리로 촬영을 나섰다. 거리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촬영을 하던 중 카메라가 고장이 났고 고쳐서 다시 찍기 시작했을 때 마침 영구차가 지나갔다. 이후 현상을 해보니 마차가 갑자기 영구차고 변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멜리에스는 여기에 힌트를 얻어 트릭영화(trick films, 촬영이나 편집 과정에서 기술적인 조작을 통하여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후 그는 의도적으로 화면을 어둡게 하거나 발5게 하는 페이드 fade, 찍은 필름을 다시 돌려 다른 장면을 찍어서 화면에 두 가지 피사체가 겹치도록 하는 이중인화 superimposition, 고속 또는 저속 촬영 fast and slow montion, 어두워지는 화면과 밝아지는 화면을 겹치는 디졸브 dissolve, 애니메이션 animation, 작은 모형을 만들어서 실제 큰 다리나 성처럼 보이게 하는 미니어춰 miniature, 컬러 화면이 나오기 전에 흑백 필름에 색칠을 하여 컬러로 보여주는 등 다양한 영상 실험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영화들, 예컨대 <달나라 여행>같은 영화들은 현실의 공간을 재현해낸 것들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을 창조해 낸 것들이었다.
멜리에스가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이루기 전까지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실제 상황을 그 시간만큼 찍은 것으로 만족하였다. 하지만 그는 10분 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2분으로 줄이기도 했으며, 다양한 모습들을 계획 속에서 통일 적으로 찍는 것을 이룩하였다. 영화 매체에 대한 멜리에스의 이러한 독특한 아이디어와 실험정신은 훗날 1920년 프랑스의 실험영화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위영화의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멜리에스는 표현주의 영화의 창시자가 된다.
뤼미에르와 멜리에스로 시작된 영화의 역사는 지금 현재 100년이 조금 넘었다. 다른 예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연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현대예술의 장자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것은 과학문명의 발전, 인류의 예술적 경험들이 폭넓게 교류될 수 있는 환경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1930년대부터 영화를 독자적인 예수로 인식한 선각자들이 생겨났고 좀더 시간이 흐르자 뛰어난 철학자, 미학자, 예술가들이 속속 영화이론과 창작의 발전에 헌신하였다. 그 결과 영화는 그 발전 과정에서 영향받은 인접 예술들 예컨대 문학, 연극, 미술, 음악 등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영상문법이다.
이것은 언어로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연극은 대본 속의 언어들, 예컨대 대사와 지문 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 작품의 흐름과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지만 영화작품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 영화작품을 이해하기 위하여 시나리오를 읽는다면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작품의 앙상한 줄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영화다운 영화는 영화예술이 가진 매체적 특성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현대 영화와 분석 입문> 강소원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