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훔쳐보기/영화읽기

한국영화 탈출구는

daseut 2005. 7. 1. 22:44
한국영화 탈출구는? "해외 시장 개척이 해답"
'주홍글씨’, ‘여자, 정혜’ 등 제작한 충무로 중견 제작자 LJ필름 이승재 대표 인터뷰
미디어다음 / 오미정 기자, 사진=정재윤 기자
한국 영화계가 위기라고 한다. 영화 수익률은 나날이 감소하고 관객 1000만 명 시대가 언제였냐는 듯 대작 영화들은 흥행 실패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일에는 영화 산업이 작년 동월에 비해 24.3%나 수익감소를 보였다는 내용을 담은 통계청의 월별서비스활동동향 보고서까지 공개돼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언론들은 이 보고서를 인용해 영화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에 영진위는 부랴부랴 ‘영화산업 월별증감률 분석보고서’를 내놓고 진화에 나섰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초대형 흥행작이 맹위를 떨친 지난해 4월을 올 4월과 단순 비교해 영화 산업이 침체에 빠졌다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라는 요지다.

이 뿐만 아니다. “송강호 최민식 등 스타연기자들이 개런티 너무 많이 받는다”는 강우석 감독의 발언으로 촉발된 영화제작사협회와 매니지먼트사의 갈등은 한동안 영화 제작자와 매니지먼트사 사이를 서먹하게 할 태세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이런 일련의 사태들은 한국 영화계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듯도 싶다.

그러나 LJ필름 이승재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이 대표는 “한국 영화가 발전해 온 15년간 영화계가 위기를 겪지 않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지금 ‘불황이다 아니다’를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영화 산업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얼마 전 영화계에서 독과점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았다. CJ엔터테인먼트의 해외법인에서 해외프로젝트를 담당할 총괄프로듀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대자본을 통해 기존 영화산업질서를 재편하고 있는 CJ와 그와의 협력관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4900만 인구라는 인구통계학적인 한계를 지닌 한국 영화 시장이 나아갈 길은 해외시장 개척밖에 없다”며 “이에 공감하는 기업이 CJ였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해외 시장을 통한 수익 창출 구조가 향후 5년 이내에 자리 잡지 못하면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며 “지금은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할 때이지 대자본의 독점 여부를 판가름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문근영 김태희 김지수 등이 소속돼 있는 나무액터스와 김래원 등이 소속돼 있는 블루드래곤 등 4개 매니지먼트사에 지분을 투자 했다. 이에 영화계 안팎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가 LJ필름을 통해 매니지먼트사에 간접 투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몇몇 언론은 이를 통해 향후 CJ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사 진출을 점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그는 “CJ의 돈으로 투자한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LJ가 가진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제작사, 매니지먼트사 등 영화계 각 주체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라며 “정훈탁과 같은 매니저 브랜드 양성을 위해 매니지먼트사에 투자한 것이지 CJ의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한 초석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새삼스럽게 위기다 불황이라 말하는 것은 의미 없어"
한국 영화 산업이 최근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들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지금 새삼스럽게 위기다 불황이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 영화계는 생존을 위해서만 달려왔다. 한숨 돌리고 순간 뒤를 돌아보니 영화산업의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던 것이다.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일부 영화 유통 인프라만 살을 찌우고 나머지는 그냥 불나방이 돼 버린다.
지금 같은 구조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지금은 영화계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 뉴 패러다임 필요한 시기다.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영화계 위기론은 언론이 부풀린 감이 있다.

"한국 영화, 지난 15년간 꾸준히 성장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수익률이 마이너스"
현재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가

패러다임의 문제는 90년대 이후 한국 영화 역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영화계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크게 변화했다. 90~95년까지는 가정용 비디오 플랫폼이 강세였던 시기고, 96~98년은 금융자본이 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때다. 이후 CJ의 CGV(98), 오리온(쇼박스)의 메가박스(2000) 개관을 필두로 2001년 이후 멀티플렉스 극장을 중심으로 시장이 급격하게 재편돼 왔다.

2004년에는 인터넷, 2005년에는 이동통신이 새로운 영화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한 위성 DMB 플랫폼의 성공 역시 향후 5년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한국 영화 산업은 ▲영화 산업의 인력 양성 ▲멀티플렉스 등 유통 인프라를 확장을 통한 시장 크기 증대 ▲ 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 50%라는 토대를 구축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수익구조가 마이너스 였다는 점이다.

"내적 시장구조 취약한 한국 영화계"
"극장 부율 조정, 부가판권 활성화, 영화계 내의 비용 절감 노력 필요"
수익이 마이너스였던 이유는 우선 영화계의 내적 시장구조가 건강하지 못한데 있다. 한국 영화는 80% 이상의 수익을 극장 입장료로 얻는다. 비디오 DVD TV 인터넷 등 부가판권 수익이 20%에 불과하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전근대적 흥행 산업으로 남아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경우 극장 수익, 비디오 DVD 판권 수익, 기타 윈도 수익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비용도 문제다. 한국 영화는 수익에 비해 비용이 많다.

이런 내적 시장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극장 부율(영화 입장료 수익 분배비율) 조정이 필요하다. 현재 부율은 5:5(극장:투자,제작사)다. 이 비율을 4:6으로만 조정해도 영화계 돈줄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부가판권 시장도 활성화해야 한다. 이미 죽어버린 비디오와 DVD 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기엔 현실적인 무리가 있다. 대신 거의 무시되다시피 하고 있는 인터넷 판권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 밖에 영화계가 새롭게 기대하는 부가판권 시장은 바로 DMB다.

영화계 내부의 비용 절감 노력도 필요하다. 배우 개런티 문제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영화제작자들이 ‘표준제작규약(99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된 한국영화 384편의 비용 분석을 통해 배우와 감독, 스태프 등에게 합리적으로 제작비를 배분하는 일종의 단체협약)’을 만들려는 것이다. 영화제작의 세 주체인 투자자 제작자 연기자에게는 규약을 지키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어려운 것은 이 표준제작규약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 영화 시장, 인구로 인한 근본적 제한 있어"
"영화 산업, 본격적인 '산업' 패러다임 필요"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인구 통계학적으로 본 한국 영화 시장의 한계다. 미국인 1인당 연간 영화 관람편수는 5.6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3.4편 정도다. 다른 나라의 예로 볼 때 현재 1억 명을 넘어선 연간 관람객 수가 2억 명까지는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2억 명 선이 한계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영화산업구조의 변화, 즉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현재의 영화 산업은 이런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불황이다 아니다를 논할 때가 아닌 것이다. 사실 한국 영화가 위기를 맞지 않은 순간은 그간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시장이 안정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다.

최근에 와서 새삼스럽게 위기다 불황이다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영화 산업 전체 수익률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영화계는 생존을 위해서만 달려왔다. 어제 어느 정도 숨 돌릴 짬이 나 뒤를 돌아보니 주머니에 돈이 안 들어온 것이다. 이런 산업 구조적 문제는 한국 영화가 본격적인 ‘문화 산업’으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바로 산업으로서 영화를 인식하는 생각의 틀이다.

"내가 CJ엔터테인먼트에서 하는 일이 해외 시장 개척"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영화 ‘맛있는 섹스’는 모 포탈의 영화보기 서비스를 통해 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화 플랫폼으로서 인터넷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는 만큼 판권 가격도 적정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DMB는 아직 두고 봐야 하지만 국가차원의 정보통신 인프라 문제이기 때문에 중도에 쉽게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해외시장개척 역시 긴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CJ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 스튜디오 전략이다. 내가 CJ와 함께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50% 이상의 수익을 해외 시장에서 올리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이런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부서가 해외영화제작사업부이고 내가 이 신설 부서의 책임프로듀서 일을 맡은 것이다.

"대기업 자본, 해외시장 개척 등 영화의 '산업화'에는 순기능 할 것"
"한국 영화의 허리 취약하게 할 가능성 있어"
CJ엔터테인먼트의 성장이 충무로 토착자본에 위해가 돼 왔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는데 왜 CJ와 손을 잡았나. CJ의 몸집 불리기가 또 다른 폐해를 낳을 가능성은 없나

해외 진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을 같이하는 파트너로서 CJ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CJ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CJ와 같은 대자본이 해외 시장 개척 등 새로운 수익모델 개발의 선두에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CJ가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면 쇼박스나, DMB 콘텐츠 확보 차원에서 영화 산업에 뛰어든 SKT와 KTF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영화 산업이 CJ 쇼박스 SKT(iHQ 지분 21.7% 인수, 700억원 상당의 영화 펀드 조성) KTF(싸이더스 픽쳐스 인수 추진) 등 4개의 대자본 질서로 재편된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때 이들이 영화 산업을 경제적 의미에서의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순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한국 영화계의 허리가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제작비 20~25억원, 관객수 100~200만명선을 기대하는 중간 크기 영화들의 돈줄이 막혀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영화 펀드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청의 투자금이 적어 실망스럽지만 신 4강 기업들이 조성할 영화 펀드가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

순기능만 있을 순 없겠지만 현재는 대기업의 독점이다 아니다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

"해외 시장 개척용 영화, 아시아 문화 다룬 영어 영화 될 것"
해외 시장 개척의 문제는 없나

해외시장을 개척하는데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호러 액션 무협 등 장르 영화와 예술영화는 가능하지만 다른 영화는 힘들다. 그래서 영어로 제작돼야 할 필요가 있다. 주로 아시아 문화를 담은 영어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곳 해외영화제작사업부에서도 줄리아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해외를 시장을 목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러브하우스’(김판수 감독) ‘러브토크’(이윤기 감독) ‘로망스’(문승욱 감독) ‘피터팬의 공식’(조창호 감독) ‘착한 남자’(송해성 감독) ‘조용한 세상’ ‘검은 집’ ‘마이 프렌드 엔 히즈 와이프(My Friend & His Wife) 등 8편을 제작, 준비 중이다. 아직은 감독들의 해외 감각을 키우고 감독 브랜드를 알려나가는 단계다.

"스타 개런티 문제, 강우석 감독이 심하게 말한 감 있어"
"하지만 스타 개런티 지나치게 많은 것 역시 문제..표준제작규약 마련되야"
강우석 감독의 발언으로 촉발된 영화제작자와 매니지먼트사의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강우석 감독이 좀 심하게 말한 감이 있다. 하지만 스타 개런티가 많은 것 역시 맞는 말이다. 영화 촬영 기간이나 흥행에 상관없이 배우 개런티는 계속 높아져만 간다. 영화의 촬영 기간이나 영화의 제작비 크기에 따라 개런티가 조정돼야 한다. 그게 바로 표준제작규약의 내용이다. 개런티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인 것이다. 표준제작규약이 짧은 시간에 정착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면 영화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는 본다.

송강호가 기자회견에서 “100억짜리 영화 ’괴물‘에서 개런티 5억을 받는데 많은 것이냐”고 물었는데 물론 그 정도 크기 영화에서 5억이 많은 개런티는 아니다. 하지만 25억짜리 영화에서는 그에 걸맞게 적은 돈을 받겠다고 얘기 했으면 그의 발언이 더 빛났을 것이다.

"매니지먼트사 투자금은 LJ필름 돈, 전문 매니저 양성에 투자한 것이다"
몇몇 매니지먼트사에 투자한 LJ필름의 돈이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보도는 맞는 말인가

일단 그 투자는 내가 직접 한 것이다. CJ와는 관계가 없다.
4군데 매니지먼트사에 투자 했는데 향후 2개 정도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좋게 말하면 비즈니스 시너지 효과이고 나쁘게 말하면 시장 지배력인데 그런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LJ필름이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제작사는 제작만, 유통사은 유통만, 매니지먼트사는 매니지먼트만 하는 방법으로 각자의 전문성을 키워 나가는 것을 바람직한 비즈니스 모델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배우가 아니라 프로페셔널 매니저에게 투자한 것이다. 다시 말해 매니저 브랜드 만들기 위한 투자인 것이다. 현재 정훈탁 이외에 누가 그런 위치에 있나. 전문 매니지먼트가 가능성을 지녔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다. 향후 이들 매니지먼트사에서 프로페셔널 매니저가 양성되는지 한번 지켜봐 달라.

이승재 대표는?
1964년 생. 고려대 철학과 졸업하고 2000년 LJ필름을 설립한 충무로 중견 제작자다. ‘수취인불명’(2000년) ‘나쁜 남자’(2001년) ‘해안선’(2002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 ‘주홍글씨’ ‘여자, 정혜’(2004년) 제작했다. 현재 CJ엔터테인먼트의 해외법인 대표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