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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악은 고도의 심리 외교전
daseut
2008. 2. 26. 22:53
출처 : 문화
글쓴이 : 중앙일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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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고도의 심리 외교전
[중앙일보 이장직] 1670년 여름 루이 14세가 진두 지휘하는 프랑스 군이 라인강을 건너 네덜란드 남부를 점령했다. 루이 14세는 8월 14일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테데움’을 연주할 것을 명했다. 이튿날 네덜란드에서 빼앗은 깃발을 앞세우고 시가 행진이 펼쳐졌다. 기마악대의 팡파르에 맞춰 행진하던 근위대 기수단이 깃발을 파리 대주교에게 바치자 일제히 장엄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루이 14세는 성당으로 가서 왕족들과 함께 합창을 들었다. 스페인, 베네치아, 사보이 대사들과 파리 시의원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테데움’이 끝나자 바스티유에서 축포가 발사됐다.

19세기초까지만 하더라도 오케스트라에서‘군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휘자(사령관)의 보병(현악기)과 포병(관악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작전을 수행해낸다. 하지만 오늘날 오케스트라를 ‘군대’로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독재형 지휘자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자발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데 음악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관현악의 화음은 말(言)이 필요 없기 때문에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연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얼굴 모습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저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인류는 서로 싸우고 반목하고 지낼 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연습과정에서도 별로 통역(通譯)이 필요 없다. 포르테(Forte), 안단테(Andante) 등 몇 마디만 하면 알아 듣는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다.
냉전 시대에 음악교류가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1990년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이끌고 소련 순회공연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국경을 바꿀 수는 없다. 음악인은 정치적인 것에 대해 잘 말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보며 웃게 만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게 중요하다.”외교 문서에 서명하는 것 못지 않게 양국 국민의 정서적 친밀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외국에서 온 교향악단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다. 지휘자는 ‘문화 친선대사’라고나 할까. 그래서 음악인이나 음악단체에 ‘유엔 친선대사’가 많다. 빈 필하모닉은 세계보건기구(WHO) 친선대사, 베를린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 중이다. 뉴욕필은 홈페이지 프로필에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대사’라고 쓰고 있다. 지난해 1월 빈 필하모닉의 전용기 출항식에는 오스트리아 대주교, 교육문화부 장관이 참석해 ‘문화대사’로서의 입지를 실감케 했다.
문화예술은 예로부터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적 예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공식적인 외교 관계 수립이 있기 전에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음악 공연단체의 상호교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상 외교에 앞서 양국의 음악단체가 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 중국-핀란드 수교 50주년 기념으로 핀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베이징 공연을 다녀갔고, 2007년에는 미국-러시아 수교 200주년 기념으로 모스크바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워싱턴에서 공연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독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독일 순회공연이 있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은 미국 외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정보 외교(프로파갠더)는 홍보 기술이나 심리전을 이용하지만 문화외교는 교육에 기초한 장기전이다. 1956년 보스턴 심포니의 소련 공연을 지원했던 미 국무부는 “미국이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 목적을 분명히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19세기초까지만 하더라도 오케스트라에서‘군대’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휘자(사령관)의 보병(현악기)과 포병(관악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작전을 수행해낸다. 하지만 오늘날 오케스트라를 ‘군대’로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독재형 지휘자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자발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데 음악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관현악의 화음은 말(言)이 필요 없기 때문에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연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얼굴 모습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저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지켜보노라면 인류는 서로 싸우고 반목하고 지낼 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연습과정에서도 별로 통역(通譯)이 필요 없다. 포르테(Forte), 안단테(Andante) 등 몇 마디만 하면 알아 듣는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다.
냉전 시대에 음악교류가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1990년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이끌고 소련 순회공연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국경을 바꿀 수는 없다. 음악인은 정치적인 것에 대해 잘 말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보며 웃게 만들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게 중요하다.”외교 문서에 서명하는 것 못지 않게 양국 국민의 정서적 친밀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외국에서 온 교향악단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다. 지휘자는 ‘문화 친선대사’라고나 할까. 그래서 음악인이나 음악단체에 ‘유엔 친선대사’가 많다. 빈 필하모닉은 세계보건기구(WHO) 친선대사, 베를린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 중이다. 뉴욕필은 홈페이지 프로필에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대사’라고 쓰고 있다. 지난해 1월 빈 필하모닉의 전용기 출항식에는 오스트리아 대주교, 교육문화부 장관이 참석해 ‘문화대사’로서의 입지를 실감케 했다.
문화예술은 예로부터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적 예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공식적인 외교 관계 수립이 있기 전에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음악 공연단체의 상호교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상 외교에 앞서 양국의 음악단체가 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 중국-핀란드 수교 50주년 기념으로 핀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베이징 공연을 다녀갔고, 2007년에는 미국-러시아 수교 200주년 기념으로 모스크바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워싱턴에서 공연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독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독일 순회공연이 있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은 미국 외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정보 외교(프로파갠더)는 홍보 기술이나 심리전을 이용하지만 문화외교는 교육에 기초한 장기전이다. 1956년 보스턴 심포니의 소련 공연을 지원했던 미 국무부는 “미국이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 목적을 분명히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