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훔쳐보기/영화읽기
[스크랩] 왕과 나
daseut
2007. 4. 22. 01:31
드라마 뮤지컬
60여명의 아내와 100여명의 아이를 가진 홍콩 최고 권력자인 한 남자에게, 영국에서 온 한 서양 여자는 어떤 존재였던가?
영국 여인은 과학과 "et ceteras" 의 매혹이었다. 왕이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던, 그래서 그의 어휘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언어는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마력으로서 그의 영혼을 좀 먹고, 결국은 정복하지 못한 언어는 그를 정복시켜 죽음으로 몰고 가고야 만다. 3박자의 격렬한 스텝으로 호흡을 헐떡이며, 잘만 보조를 맞추었더라면 소통의 극치를 이룰 수 있었지도...
동양 남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죽음만큼 매력적이었던, 어깨는 내어 놓아도 아래 속옷은 몇 겹으로 갖추어 입어야 하는 예법에 길들여 있는 여선생님은 과학이었다. 뜨거운 감정을 잘 포장하여 드러내 놓지 않는, 대신에 이지적인 합리성으로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그 당당함은 야만과 계몽 사이를 배회하는 남자에게는 애닯은 목마름이었다.
왕인 자기 보다도 머리를 위에 두지 않는다는 약속을 요구하여 관철시켰을 뿐, 그 약속은 아무 의미없는 유희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현명함만이 존재했었던 왕이다. 왕의 운명은 밀려오는 서구의 바람에 온 몸을 긴장시켜 버티어 내고 있는 실존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이었다. 삶이란 어차피 예고할 수 없는 바람들에 순간을 선택하며 한 발자국씩 옮겨 감의 반복일 뿐이다. 그 발걸음의 당당함에 베여 있는 고독함이 인간의 운명 아니겠는가?
그의 영혼이 오늘에 홍콩을 지켜보고 있나보다.
출처 : 삶, 무의 존재 존재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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