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훔쳐보기/한국의 일상들
[스크랩]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36년만에 제 모습
daseut
2006. 11. 28. 10:39
2006년 11월 28일 (화) 03:06 조선일보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36년만에 제 모습
[조선일보 최재훈기자]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대명사 격인 경북 경주 최부잣집 고택(古宅)의 사랑채<사진>가 36년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앞으로 별당과 낡은 대문채, 방앗간 등도 복원된다.
경주시와 영남대는 오늘(28일) 오전 경주시 교동 69번지 경주 최씨 ‘교촌가’(校村家·10대에 걸쳐 만석 재산을 유지해 온 경주 최씨 일가)에서 사랑채 준공식을 갖는다. 18세기에 신라 요석궁 자리에 지은 이 고택은 당초 99칸에 대지 2000평, 후원(後園) 1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해방 후 규모가 줄어 대지1000평에 건물 5채만 남았고, 그나마 1970년 원인 모를 불로 별당과 사랑채를 잃었다. 방치됐던 사랑채는 작년 복원이 시작돼 5억3000만원을 들여 36평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곳 사랑채는 구한말 영덕 출신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피신 왔었고,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선생이 의병 수백 명과 며칠 묵는 등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 일본 강점기에는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이 왕세자 시절 경주 서봉총(瑞鳳塚) 금관을 발굴하려고 왔다가 묵었고, 의친왕 이강(李堈)이 엿새 머물고 집주인 최준(崔浚)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주었다고 한다. 최준은 최치원(崔致遠)의 28세 손이다.
300년 만석꾼인 이 집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말라’,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라’,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등의 가훈을 받들어 일제 때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제공하고, 광복 후에는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의 설립에 전 재산을 기부했다. 때문에 고택은 현재 영남대 소유다. 영남대는 “교촌가 고택을 한국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대명사 격인 경북 경주 최부잣집 고택(古宅)의 사랑채<사진>가 36년 만에 제 모습을 찾았다. 앞으로 별당과 낡은 대문채, 방앗간 등도 복원된다.
경주시와 영남대는 오늘(28일) 오전 경주시 교동 69번지 경주 최씨 ‘교촌가’(校村家·10대에 걸쳐 만석 재산을 유지해 온 경주 최씨 일가)에서 사랑채 준공식을 갖는다. 18세기에 신라 요석궁 자리에 지은 이 고택은 당초 99칸에 대지 2000평, 후원(後園) 1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해방 후 규모가 줄어 대지1000평에 건물 5채만 남았고, 그나마 1970년 원인 모를 불로 별당과 사랑채를 잃었다. 방치됐던 사랑채는 작년 복원이 시작돼 5억3000만원을 들여 36평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곳 사랑채는 구한말 영덕 출신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피신 왔었고,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선생이 의병 수백 명과 며칠 묵는 등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 일본 강점기에는 스웨덴 구스타프 국왕이 왕세자 시절 경주 서봉총(瑞鳳塚) 금관을 발굴하려고 왔다가 묵었고, 의친왕 이강(李堈)이 엿새 머물고 집주인 최준(崔浚)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주었다고 한다. 최준은 최치원(崔致遠)의 28세 손이다.
300년 만석꾼인 이 집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말라’,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라’, ‘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등의 가훈을 받들어 일제 때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제공하고, 광복 후에는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의 설립에 전 재산을 기부했다. 때문에 고택은 현재 영남대 소유다. 영남대는 “교촌가 고택을 한국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구=최재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acrobat.chosun.com])
출처 : 얼바람
글쓴이 : 최성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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