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점
'영화의 시점'이란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를 일컫는 말이다. 만약 시점이 계획적으로 조정되어 있지 안고 혼란스러우면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대단히 헛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의 시점과 소설의 시점은 다른 것이다. 소설의 시점은 일반적으로 화자로 이해하면 된다. 이 화자의 눈을 통해서 스토리를 이해하게 되고 화자가 설명하는 것을 독자들은 나름대로 흡수한다. 소설의 시점은 1인칭, 3인칭, 전지적, 객관적 시점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특정 시점을 정하고 난 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영화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단지 감독이 특정한 효과를 내기 위하여 일관된 시점을 유지할 수도 있으나 대체로 영화는 영상의 논리성 위에서 적당한 시점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면 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시점이란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된다. 하나는 광학적 차원의 시점이다. 이것은 '가'라는 인물의 상반신 장면이 나온 후 '파도치는 해운대 바닷가 풍경'이 보여지고 그 다음에 다시 '가'라는 인물의 얼굴 표정 장면이 나왔을 때 관객들에게 이 세 개의 쇼트가 어떻게 인지되는가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즉 '가'라는 인물의 상반신이 나왔을 때 관객들은 그냥 '가'를 볼뿐이다. 그 다음에 '파도치는 해운대 바닷가 풍경'이 나오면 관객들은 '가'와 '풍경'을 어떤 의미 관계로 파악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 다음에 '가'의 얼굴 클로즈 업 쇼트가 나오면 관객들은 '가'가 '파도치는 해운대 풍경'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광학적 시점이란 '누가 무엇을 본다'라는 맥락에서 논의되는 시점을 일컫는다. 또다른 하나의 시점은 서사적 차원의 시점이다. 만약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을 다룬 영화가 있다면 파업을 바라보는 입장은 서로 다를 것이다. 이 영화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파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의 서사적 시점은 '노동자의 시점'이 되는 것이고, 파업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자본가의 시점'이 되는 것이다. 즉 서사적 차원의 시점이란 관점이나 입장에 해당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시점을 지칭할 때 광학적/서사적 시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독자 또는 관객들은 전체 문맥 속에서 그것을 파악해야만 한다. 광학적/서사적 시점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영화를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필요한 개념인데, 사실상 어떤 영화의 특정장면에서 명확하게 일관된 시점을 정의하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논의를 광학적 차원의 시점으로 한정짓도록 하자. 우선 범주로 묶을 수 잇는 시점으로는 객관적 시점, 주관적 시점, 감독의 시점, 간주관적 시점 등이 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는 전지적 시점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영화전체로 봐서 그렇다는 말이고 하나하나의 쇼트 혹은 신을 주의 깊게 보노라면 그것들은 각기 나름대로 종류가 다양한 시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전지적 시점이란 주관적인 1인칭 쇼트에서 여러 가지 객관적 쇼트로 전환되었다가 또 다시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접사로 갔다가 지극히 객관적인 롱 쇼트로 전환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처럼 시점변화가 자유자재로 가능한 영화는 통상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부른다.)
객관적 시점은 마치 영화의 장면을 실제 현실로서 눈앞에 나타나는 그대로 보게끔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카메라는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카메라로 찍힌 것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관객들은 영화에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묵묵한 관찰자로서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표정에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카메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러한 객관적 시점은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해석하지도 않으며 쉽사리 논평하려 들지도 않는다. 따라서 객관적 시점은 극적 국면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분명히 논리적으로 의사전달을 하는 강점을 안고 있다. 반면 이것이 지나치면 너무나 비개성적인 화면에 관객들이 극적 구조에 흥미를 잃거나 지나치게 주의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영화 보는 것을 포기하고 나가떨어질 위험도 있다.
주관적 시점은 관객을 영화 속에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즉 관객이 극중인물의 시점이 되어 그 극중인물이 사건에 대해 느끼는 정서를 똑같이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촬영된 장면은 카메라의 정교 한 움직임과 절묘한 테크닉 그리고 표현주의적인 촬영방식을 이용하여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관객을 영화 속으로 깊숙이 빨아들인다.
감독의 시점은 감독이 특수한 촬영방법과 편집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것을 나타내는 방법을 말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촬영각도로 촬영하거나 아니면 특수렌즈를 이용하거나 또는 필름을 느리거나 빠르게 하여 감독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이 방식은 그러나 관객들은 지나치게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다행히 관객들이 전후맥락 속에서 감독의 의도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치기가 더덕더덕 묻은 셀룰로이드 조각으로 밖에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간주관적 시점은 실제로는 극중인물의 시점이 아니면서도 관객을 영화 내의 사건이나 상황에 가까이 접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연루감이나 영상체험을 강화시킨다. 예컨대 살인자에게 몰려 화장실에 갇힌 극중 인물과 살인자가 칼로 화장실 문을 마구 찌르는 상황에서 극중인물의 다급한 표정과 함께 문을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칼날의 접사는 긴박감과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 때 관객은 극중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는 않으면서도, 즉 주관적 시점은 아니면서도, 직접 그 상황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는다. 이를 간주관적 시점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학생 실습 작품인 <스토커>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시점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1) 객관적 시점 :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각작 자기를 소개하는 쇼트들.
2) 극중 인물의 주관적 시점 :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다른 남자가 사이좋게 만나서 걸어가는 쇼트
3) 간주관적 시점 :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과 다른 남자가 정답게 걸어가는 모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표정 쇼트.
4) 감독의 시점 : 새 학기 첫 시간에 교수의 풀 쇼트로 시작하여 줌 아웃으로 교실 전체를 비추고 자기 소개를 하는 학생들을 풀 쇼트로 다시 잡는 한편 패닝하면서 주인공이 교실 뒤편에서 심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가서 클로즈 업으로 잡은 쇼트
이 영화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학생 실습 작품이므로 쇼트 배치의 측면에서 연출 의도가 훌륭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스토커인 주인공의 모습을 불안한 카메라 흔들림과 클로즈 업으로 구성함으로써 그 개인의 불안한 운명에 대한 암시는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현대 영화의 분석 입문> 강소원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