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 온 한국 영화 산업. 하지만 최근 불거진 작자협회와 매니지먼트사 사이의 불협화음, 영화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고한 통계청의 자료 공개 등 일련의 사건들은 이 같은 성장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충분했다.
피상적인 관점에서는 한국 영화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언론의 호들갑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 영화계가 처한 현실은 ‘위기다, 아니다’로 양분지어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간단치가 않다.
# 수익 감소 발표한 통계청 자료, 언론의 과장 보도로 위기감 키워
지난달 초 영화 산업이 지난해 동월 대비 -24.3%의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해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통계청의 자료 역시 단순히 지난해 4월과 올해 4월을 비교한 수치여서 이를 가지고 영화산업이 침체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이에 반박 자료를 냈던 영화진흥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영화 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 월별 비교가 낮아졌다고 침체기라고 말 할 수는 없다”며 “통계청의 자료는 배급과 상영 수익에 국한된 것인데 언론에서 이를 영화 산업 전체의 성장률이 그렇게 떨어진 것처럼 과장해 보도했다”고 말했다. 통계청 역시 그 수치는 단순히 지난해 동년과 비교한 것일 뿐 산업 자체의 침체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되긴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제작자와 투자자, 영화 시장에 대한 판단 엇갈려
 |
|
지난달 28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우석 감독이 한국영화계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통계청의 수치를 보고 위기감을 키운 일부 언론과 이에 반박한 영진위의 공방처럼 영화산업 종사자들 역시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해 양분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제작자들 대부분은 영화 산업 자체가 침체기에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신 고비용 제작 구조로 인해 점차 낮아지는 수익률을 당면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불법다운로드를 근절하고 영화 산업의 구조적 재편을 통해 불균형하게 배분되는 수익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노비스 엔터테인먼트 노종윤 대표는 “투자사들의 투자수익률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시장 전체의 크기가 줄어드는 상황은 아니다”며 “위기 상황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노 대표는 “문제는 케이블, 인터넷 등 수익률이 적은 매체가 극장 수익에 악영향을 미쳐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라며 “불법다운로드 등 새로운 플랫폼의 모럴 해저드도 문제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화계 관련자들도 책임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영화 ‘간큰 가족’을 제작한 두사부필름 윤제균 감독 역시 “우리 영화 중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며 “수익률 감소 문제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제작자나 투자자에 비해 멀티플렉스 극장과 연기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데도 극장은 부율(영화 입장료 수익에 대한 극장과 제작, 투자사의 배분 비율)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연기자는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고정된 개런티를 받고 있다”며 영화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했다.
또 다른 영화 제작자 역시 수익률 저하를 문제로 들었다. 이 제작자는 “수익선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영화인들이 인터넷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이를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위성 DMB 플랫폼도 결국 이동통신사의 주머니만 채워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 투자, 배급사 더 큰 위기감 느껴
 |
|
올 상반기 기대작 중 하나였던 '주먹이 운다'(류승완 감독)는 관객 수 면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성격표를 받아들었다. [사진=연합뉴스] | 당장 수익률의 저하를 경험한 배급사나 투자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제작자들이 체감하는 문제의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수익률 저하의 문제를 넘어 지속된 경제 불황 때문에 영화 산업 자체가 침체됐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불법 다운로드와 변화하는 여가 문화도 영화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투자·배급사인 쇼이스트의 한 관계자는 “증가세를 보이던 관객수가 갑자기 떨어졌는데 다시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영화 경기가 많이 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 비해 대작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주먹이 운다’ ‘댄서의 순정’ 등 상반기 기대작들도 예상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못했다”며 “투자자들마저 영화 투자를 망설이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투자사인 IMM 투자자문의 이근승 대표 역시 “마케팅 비용, 연기자 개런티 등 때문에 제작비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극장을 찾던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 패턴은 변화하고 있어 영화가 과거와 같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투자 대상으로서의 영화산업은 과거보다 매력이 다소 줄었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 영화산업의 당면 문제들, 해결책은?
위기에 대한 체감 정도는 다르지만 영화계 관계자들은 펀드 만기로 인한 자금 문제, 극장 부율 조정 문제, 제작 시스템 문제, 등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해야만 영화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작업만은 아니다.
자금 문제의 경우 위성 DMB 콘텐츠 확보를 위해 영화 투자에 뛰어든 이동통신사의 자금으로 한숨을 돌린 상황. SK텔레콤은 이미 제작사 iHQ 지분 21.7% 인수하는 방법으로 영화 투자를 시작했고 700억 상당의 영화펀드도 조성할 예정이다. KTF 역시 영화사인 싸이더스픽쳐스의 인수를 추진하는 한편 펀드 조성에 80억 가량의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통사 자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 영화계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중간 크기의 영화들이 죽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인들은 또 이통사의 투자를 받은 영화가 극장 개봉과 거의 동시에 DMB에 공개될 때 발생할 시장질서 교란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LJ필름 이승재 대표는 특히 “이통사가 위성 DMB로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할 경우 발생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향후 자본 유출을 경계하기도 했다.
 |
|
극장과의 부율 조정 문제는 영화계가 꾸준히 요구해 오던 사항이다. [사진=연합뉴스] | 제작, 투자사가 5대 5로 입장료 수익을 나누고 있는 현재의 부율 문제 역시 극장 측의 반발로 조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CGV의 한 관계자는 “우리만 부율을 조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전국의 많은 단관 극장이 부율 조정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서울시극장협회의 한 관계자도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제로 의무 상영일수를 보장받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외국영화와 같은 부율을 적용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제작 시스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영화제작자협회가 제시한 표준제작규약 역시 영화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공감대를 얻을지 미지수다. 규약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제작비를 각 제작 주체들에게 배분하겠다는 게 제협의 의도지만 개봉영화의 데이터를 분석해 합리적 규약을 만드는 것 자체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한 영화인은 “배우들 개런티 문제의 경우 배우는 기근 현상이 시달리고 작품은 많아 시장논리에 따라 치솟은 면도 있다”며 “인위적인 규약으로 통제가 될지는 의문”이는 의견을 피력했다.
위기이든 기회이든 2005년 영화계는 변혁기를 맞고 있다. 자본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고 내적 체질 개선의 목소리 또한 어느 때보다 높다. 한계가 멀지 않은 한국 영화 시장만을 바라보고 영화를 만들기엔 제작비 규모가 너무 커졌다. 한국 영화계가 지금까지 보여 왔던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홍콩의 영화 산업처럼 사그라들어 버릴지, 한국 영화계는 지금 중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